【포토】충효사(忠孝祀)ㅡ충성과 효의 상징, 상촌 김자수 선생을 기리다
상촌공 김자수의 절의는 학주 김홍욱의 직언을 거쳐 추사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로 이어졌다. 본보는 창간 1주년을 맞아 국보 《세한도》에 응축된 강직한 선비정신과 인간을 향한 깊은 사랑을 되새기며, 오늘의 세한을 건너는 상촌공파의 시대정신을 조명한다.
상촌공파 종중이 갈등과 법적 분쟁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과 종인 간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원칙은 굳건히 세우되 인화와 포용의 지혜를 모아, 선조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명품 가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장검을 빼어 들고 다시 앉아 헤아리니 흉중에 먹은 뜻이 한단보(邯鄲步) 되었구나 두어라, 이 또한 한 명(命)이니 일러 무엇하리오.”― 김천택, 『청구영언』 중에서‘한단보(邯鄲步)’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연나라의 한 젊은이가 조나라 수도 한단..
신도비는 묘역의 위상과 인물의 삶을 함께 전하는 석조 기록물이다. 상촌공 묘역에 남은 신도비와 와비를 통해 ‘神·道·碑’ 세 글자의 유래와 의미, 그리고 비석 문화에 담긴 역사와 정신을 살펴본다.
상촌신보 제호를 집필한 하정(河靜) 신영희 작가는 전통 서예의 깊이를 현대 감각으로 확장해 온 필묵 예술가다.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그녀의 서체는 상촌공의 정신과 종중의 품격을 담아내며, 상촌신보의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신라 천년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은 굴욕의 항복이 아닌 백성을 위한 결단을 택했다. 피로와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 그는 왕권보다 민심을 우선하며 새로운 역사의 문을 닫고 또 다른 문을 열었다.
고려 말 조선 초 격동기 속에서 상촌공 김자수는 성리학적 학문관과 충·효의 실천으로 한 시대의 정신을 세웠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닌, 후대의 길을 밝히는 실천적 철학이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명(名)·자(字)·호(號)에 담긴 뜻은 곧 삶의 정신이자 후손에게 전해지는 귀한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