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어젯밤 내린 비 뒤에 꽃이 피었더니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부는 바람에 곧 지고 말았네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가련하구나, 한 봄의 온갖 영화가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비바람 속에서 왔다가 가버리는구나.이 시는 조선 중기 문인 운곡(雲谷) 송한필(宋翰弼, 1539~?)이 읊은 「우음(偶吟)」이다. 봄날의 짧은 아름다움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작품으로,
피었다가 이내 지는 꽃의 운명을 통해 세상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송한필은 형 송익필(宋翼弼)과 함께 당대 문명을 떨친 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부친 송사련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면서 신분이 노비로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고, 이후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촉발된 기축옥사 속에서 정치적 격랑을 겪었다.
그럼에도 형제는 학문적 명성을 잃지 않았다. 당대 대학자 이이(李珥)가 “성리학을 함께 토론할 인물은 송익필 형제뿐”이라 평했을 정도였다.
학문과 덕망으로 인정받았던 선비였지만, 정치적 격변 속에서 그 삶 역시 풍우 속 꽃과 같았다.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젯밤 비가 그치자 꽃이 피어났지만, 오늘 아침 바람이 불자마자 꽃은 이내 지고 말았다. 한 봄의 영화가 비바람 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모습은
인간 세상의 이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무상을 일깨우는 말로 흔히 인용되는 경구가 있다.
只道花無十日紅 (지도화무십일홍) 꽃은 열흘 붉은 꽃이 없고權不十年 (권불십년) 권세는 십 년을 넘기기 어렵다.이 말의 연원은 중국 남송 시인 양만리(楊萬里)의 시 「납전월계(臘前月季)」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유래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세상의 영화와 권세가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일깨우는 경계의 교훈으로 널리 전해지고 있다.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이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조선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이 극렬히 대립하며 수많은 인재들이 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처럼,
현대 정치 역시 갈등과 분열 속에서 소모적 대립을 반복하고 있다. 정치는 본래 덕(德)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유교 정치 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정치의 출발점은 수기(修己)이다. 자신을 먼저 닦은 뒤에야 비로소 치인(治人), 곧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보면, 스스로를 단련하기보다 권력을 먼저 좇는 모습이 적지 않다. 덕을 쌓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덕치(德治)의 이상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요순(堯舜)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상적인 정치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의 본래 모습일까. 절기상 우수(雨水)를 지나 봄기운이 스며드는 이때,
비바람 속에 피었다가 지는 꽃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권력은 오래가지 않지만, 덕은 오래 남는다.‘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오늘의 정치에 던지는 경고가 유난히 깊게 와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