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쏠리다’는 본래 무언가를 거침없이 쏘거나 쏟아내는 뜻의 ‘쏘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물이 한곳으로 힘차게 흘러들 듯 사람과 사물이 특정 방향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큰 힘과 가치에 이끌려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흔히 ‘쏠림’을 편향이나 치우침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쏠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삶은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방향과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선조의 피를 나눈 종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향해 마음을 모으는 일은 편향이 아니라 귀향(歸鄕)에 가까운 본능이다.
조상을 공경하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마음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숭고한 응집력이다. 최근 우리 종중 안에서는 크고 작은 이견이 충돌하며 갈등과 대립의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문중의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가 불신과 반목으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마땅히 하나 되어야 할 종인들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과제다.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해 쏠려 있는가.만약 사소한 감정의 앙금이나 개인적 이해득실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면 분열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사로운 집착과 편협한 시각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이익을 향한 쏠림이 아니라 가문의 미래와 공동체의 화합이라는 더 큰 가치를 향한 마음의 집중이다.
유학에서 강조하는 ‘친친(親親)’의 가르침은 사랑과 책임의 실천이 부모와 형제, 일가친척을 아끼고 돌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가 쉽게 맺어지고 끊어지는 시대일수록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듬는 마음은 더욱 소중하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정신적 기반이다.더욱이 상촌공(桑村公)의 충절과 절의를 함께 이어받았다는 자긍심, 그리고 같은 뿌리를 공유한 종인들이 있다는 정서적 유대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동체적 자산이다.
종중은 단순히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선조의 정신을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하는 삶의 공동체이다. 이러한 혈연적 쏠림은 단순한 정서적 위안을 넘어 공동체를 지키는 강인한 면역력으로 작용한다.
한자 ‘족(族)’은 본래 하나의 깃발 아래 화살을 든 전사들이 모여 있는 형상을 본뜬 글자라고 한다. 이는 위기의 순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결속과 연대의 정신을 상징한다.돌이켜보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상촌공파가 수많은 국난과 시대적 격변 속에서도 명문거족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 역시 여기에 있었다.
선조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숭조돈목(崇祖敦睦)의 기치 아래 개인의 이해보다 가문의 명예를, 분열보다 화합을, 갈등보다 결속을 선택했다.
그 정신이 오늘의 상촌공파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금 우리 종중이 겪고 있는 대립과 분열이라는 열병을 치유할 명약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면서도 끝내 북극성을 향하듯, 흩어진 종인들의 마음 또한 결국 상촌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향해 모여야 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서로를 밀어내는 차가운 벽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감싸 안으며 함께 비바람을 견뎌내는 따뜻한 뿌리의 정신이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칠수록 숲속의 나무들이 뿌리를 깊이 얽어매고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쓰러짐을 막아내듯, 우리 또한 상촌의 깃발 아래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이제 우리는 사사로운 감정과 이해관계를 넘어 상촌이라는 더 큰 이름 아래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모든 종인의 마음이 같은 뿌리를 향해 힘차게 쏠릴 때, 오늘의 갈등은 화합으로 바뀌고 우리 가문은 더욱 빛나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