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촌 김자수 선생의 와비(臥碑)ㅡ충절과 학문의 자취를 새긴 비석
이 비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충신이자 학자인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1351~1413) 선생의 유언에 따라 세워지지 않은 묘비의 자취로, 후손들이 ‘와비(臥碑, 누운 비석)’라 부르며 전해오고 있는 특별한 유산이다.
김자수 선생은 생전에 아들 김근(根)에게 “내가 죽거든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따라 당시에는 묘비를 세우지 않았으나,
훗날 후손들이 이를 “세우지 말라 하였지, 눕혀 두는 것은 괜찮다”는 방식으로 해석하여, 결국 비문을 새긴 석비를 세우지 않고 눕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선조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했던 후손들의 해석은 독특한 형식의 비석, 곧 와비로 남게 되었다.
이후 약 600여 년이 흐른 1926년, 후손들에 의해 땅속에서 와비가 발굴되었으나, 오랜 세월로 인해 비문이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웠다.
이에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사헌을 지낸 채유후(蔡裕後)가 새롭게 비문을 짓고, 다시 신도비(神道碑)를 건립하게 되었다.
현재 이 와비는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누운 형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별도로 세운 순절비(殉節碑)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비석은 단순한 석조물이 아닌, 충절과 겸허함의 정신을 오늘에 전하는 상징적 기록물로 그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