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쪽집게’라고 답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의미의 완전한 전환이자 전통의 상징이 희화화(戲畫化)된 현실이다.
가정의 어른들조차 기르는 애완견의 혈통은 훤히 알면서도, 정작 자신의 족보에는 무관심하다. 휴대전화에는 네비게이션을 깔아두면서도 족보나 가계도 한 권 비치한 집은 드물다.아파트 단지 곳곳에 붙은 ‘집 나간 개를 찾습니다’라는 벽보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사례금은 이제 낯설지 않다. 애완동물에 애정을 쏟는 일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의 뿌리인 족보에는 무심하면서, 취향과 소유의 대상에는 거액의 가치를 부여하는 세태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이는 ‘존재의 가치’보다 ‘소유의 가치’를 앞세우는 전도된 가치관의 단면이며, 인간을 중심에 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족보는 한 가계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한 성씨의 시조로부터 이어진 혈통과 삶의 궤적을 체계적으로 담아낸 공동체의 역사서이자 기억의 산물이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한 족보에는 개별 가족의 일대기와 함께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 고유의 전통이며, 가문의 아카이브라 할 만하다.한국 사회에서 족보는 단순한 혈연 기록을 넘어,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가문의 자긍심(自矜心)을 키워왔다. 이를 통해 개인은 가족을 넘어 국가로 확장되는 충·효의 윤리와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해 왔다.
자신의 족보를 모른다는 것은 나를 있게 한 역사적 맥락, 곧 ‘주체로서의 서사’를 상실했음을 뜻한다. 이는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 당장의 실용만을 좇는 단편적 역사 인식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전통적 족보에는 조상이 지향했던 삶의 태도와 가통(家統)이라는 인문학적 자산이 담겨 있다. 품종은 알아도 족보는 모르는 풍조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신적 유산보다 물질적 형질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물질만능주의의 그림자다.
뿌리 뽑힌 현대인의 불안한 정체성은 족보를 통한 연대 의식의 약화에서 비롯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족보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듯, 족보는 개인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준다.중국 사회가 중시해 온 ‘관시(关系)’ 문화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족보를 통해 혈연·지연·학연을 엮어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이는 단순한 인맥을 넘어,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자 자산이었다. 오늘날 혈연과 학연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공동체적 연대와 상호 신뢰에 있었다.
우리 사회는 밖과의 연결감과 연대의 결핍을 엉뚱한 방식으로 보상받으려 하기보다, 종중과 종사에 대한 성찰과 관심을 통해 뿌리의 네트워크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족보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정체성의 지도이자 인간관계의 중요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