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법리를 넘어, 인화(人和)의 지혜로 명품 가문을 다시 세우자경주김씨 상촌공파 문중의 소통 창구이자 화합의 마당인 『상촌신보』가 어느덧 지령 제12호를 맞았다. 김기학 종중 회장이 밝힌 바와 같이, 본보의 발간 취지는 “선조의 위업을 기리고 상호 존중과 화합을 다지며,
종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데” 있다. 그동안 『상촌신보』는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선조의 고결한 학문과 선비정신을 널리 알리고, 유서 깊은 문중의 역사와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소통의 장으로서 묵묵히 소임을 다해 왔다.종중가 결성된 이래 60여 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성취와 보람도 컸지만, 아픔과 시련 또한 적지 않았다. 종중은 전국 각지의 종인을 하나로 잇고 선조를 숭모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문중 안팎에서 불거진 갈등과 대립으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신현동 종토 매각을 둘러싼 이견은 종인 간 불신의 골을 깊게 했고, 잇따른 법적 분쟁은 종중 운영에 무거운 부담을 안겼다.
상촌공 묘역 성역화 등 시급한 숙원사업이 지연되고 『상촌신보』 발행마저 차질을 빚은 현실은 우리 모두가 냉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대목이다.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모든 문제를 오직 흑백의 법리와 시비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태도다. 법과 규정은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기본 토대이며,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는 종중의 신뢰를 세우는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 갈등의 상처까지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다. 법정에서 법적 판단이 내려진다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게 자리한 불신과 갈등의 상처까지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 기대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지금 우리 종중이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품는 인화(人和)의 마음이다.
맹자가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가르쳤듯이, 구성원 간의 굳건한 신뢰와 화합이 없다면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분명한 원칙 위에 따뜻한 포용을 더해 품격 있는 문중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한다.첫째,문중의 화합을 모든 판단에 앞서는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선조께서 물려주신 종재와 전통은 갈등의 불씨가 아니라 후손 모두가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공동자산이다.
사안에 대한 견해가 다르더라도 상대를 배척하거나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주장과 이해관계에 앞서 우리 모두가 상촌공의 후손이라는 굳건한 뿌리를 되새기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둘째, 공정하고 투명한 종중 운영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다져야 한다. 사안이 중대할수록 합리적 절차와 객관적 기준을 충실히 지켜야 하며, 회계와 재산 관리 역시 한 점 의혹 없이 공개되어야 한다.
다만 규정과 절차는 사람을 갈라놓는 장벽이 아니라 신뢰를 세우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고루 존중하고, 성실한 소통과 충분한 설명을 바탕으로 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굳건한 신뢰가 뿌리내릴 수 있다.셋째, 서로 포용하고 배려하는 돈목(敦睦)의 미덕을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문중의 품격은 외형적인 재산의 규모나 화려한 사업에만 있지 않다. 종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의 처지를 살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세대와 지역, 견해의 차이를 넘어 상부상조할 때 비로소 품격 있는 명문가의 전통은 완성된다. 다양성을 인정하되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는 성숙한 자세가 절실하다.이제 우리 종중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시련의 뜨거운 담금질을 견딘 쇠가 더욱 단단해지듯, 오늘의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한다면 이는 상촌공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소중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원칙은 흔들림 없는 기둥으로 세우되,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 기둥을 따뜻하게 감싸는 품이 되어야 한다. 상촌공파가 과거의 명성에만 머물지 않고, 맑은 선비정신과 곧은 염치가 살아 숨 쉬는 진정한 ‘명품 가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선조께서 물려주신 자랑스러운 전통을 훼손 없이 계승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립과 반목을 넘어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갈 때, 우리는 찬란한 새 역사를 후손들에게 당당히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