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寒食)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 개지추(介之推)의 절조(節操)를 기리는 마음에서 비롯된 풍속이다.    흔히 개자추(介子推)로 알려져 있으며, 개추(介推), 개자(介子)라고도 불린다. 최초의 기록은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24년조에 보인다.한식은 단순히 찬 음식을 먹는 절기가 아니라,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스스로의 절의를 지킨 한 선비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한자(漢字)의 형상 속에 담긴 옛 의미를 살펴보면, 왜 이 글자들이 ‘추위’와 ‘음식’을 뜻하게 되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먼저 ‘寒(찰 한)’ 자를 보면,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집을 뜻하는 宀 아래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은 혹독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짚더미 속에 몸을 묻고 있지만, 발아래에는 얼음을 뜻하는 冫이 있을 정도로 매서운 한기가 깃들어 있다.    이는 실내에서도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형상화한 글자이다.다음으로 ‘食(밥 식)’ 자는 밥그릇의 뚜껑을 뜻하는 亼과 고소한 음식의 향기를 나타내는 皀이 결합된 글자이다.    따뜻한 밥이 담긴 그릇 위에 뚜껑을 덮어 향기가 새어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 글자는 ‘먹다’, ‘음식’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었다.중국 춘추시대의 개지추는 권력 다툼 속에서 공자 중이(重耳)를 19년 동안 정성껏 수행하였다. 훗날 중이가 진나라 왕위에 올라 진문공(晉文公)이 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고난의 세월을 잊고 공훈을 다투기 시작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던 날,    그들은 고생의 상징이었던 누더기 옷과 쪽박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를 지켜본 개지추는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의 동고동락이 겨우 이날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어려운 시절을 쉽게 잊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말할 자격이 없소.”그는 벼슬에 대한 미련 없이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 숨어 살았다. 개지추의 예견대로 공신들은 점차 사욕에 빠졌고 민심은 흔들렸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진문공은 개지추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그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참모의 조언에 따라 산에 불을 놓으면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개지추는 끝내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버드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은 채 불길 속에서 생을 마쳤다.이 일을 깊이 뉘우친 진문공은 개지추가 세상을 떠난 날에는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고 찬 음식만 먹도록 하였다.    불에 타 죽은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훗날까지 이어져 한식(寒食)이라는 절기가 되었다.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산에서도 가장 먼저 돋아나는 풀이 쑥이다. 잿더미 속에서도 새로 돋는 쑥은 ‘죽어도 죽지 않는 절조’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식날이면 쑥떡이나 쑥국을 먹으며 개지추의 청빈한 삶과 절의를 기려 왔다.이제 곧 다가올 한식 즈음,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절개 있는 삶의 이정표를 남긴 상촌공(桑村公)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광주(廣州) 추령(秋嶺)에 잠든 그 묘역을 찾아가 본다면, 한식의 찬 음식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선비의 절조와 정신이 우리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최종편집: 2026-04-20 2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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