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문화는 끊임없이 재창조된다.” 대전 중구 일대에 조성된 ‘효!월드(Hyo World)’ 테마단지를 답사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말이다. 효문화마을, 뿌리공원, 한국족보박물관, 한국효문화진흥원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공간은, 각 가계(家系)에 전래되어 온 효(孝) 문화의 이야기와 유물을 하나의 서사 구조로 엮어낸 국내 유일의 문화복합지구다.    전통은 박제된 유산이 아닌, 시대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살아 있는 문화로 승화시켜 생동감 있는 문화자산으로 재구성했다.   ‘효!월드’는 단순한 공원이 아닌 하나의 문화 철학 공간이다. 그 중심에는 뿌리공원과 한국족보박물관이 있다.    오랜 세월 묻어둔 선조의 기억과 혈통의 기록을 현세로 불러내기 위한 후손들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효문화’를 세계 최초로 집대성했다는 자부심이 명칭에 그대로 담겨 있다.세계 유일의 ‘효(孝)’ 테마문화공원1997년 개장한 ‘효!월드’ 테마단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민관 협력 체계를 통해 조성된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효’ 테마공원이다.    11만9,062㎡ 규모의 공원에는 244개 문중이 기증한 성씨 조형물, 효 산책로, 잔디광장, 수변무대, 야간 경관조명, 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돼 있으며,    체험형 교육공간이자 살아 있는 역사교육 현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이 일대는 단순 보존을 넘어 지속적 확장을 목표로 한 녹지정책이 추진되며,    풍치지구로 조성되고 있다.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휴식과 사유, 체험과 교육이 동시에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은 이렇게 재창조된다. 문화유산을 박물관 안에만 가두지 않고, 자연경관과 결합시켜 관광자원화하고, 체험과 교육 콘텐츠로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효문화는 이제 하나의 생활문화이자 관광문화, 교육문화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뿌리에서 시작되는 여정‘효!월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유등천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유등천을 가로지르는 만성교 입구에는 효도령과 효낭자 캐릭터 조형물이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반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공간은 단연 한국족보박물관이다. 한국족보박물관은 대전 중구가 2010년 사업비 36억 원을 투입해 건립한 국내 최초의 ‘족보 전문 박물관’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연면적 1,733㎡)로, 전국 240여 개 문중이 기증한 족보 6,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임금의 교지(敎旨) 200여 점, 1700년대 호패(號牌) 7점, 문집 200여 권 등 귀중한 기록문화유산이 함께 전시돼 있다.설·추석 명절은 물론 평소에도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찾는 이곳은 ‘기록문화로서의 족보’라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세계 유일의 족보 문화족보는 단순한 가계도(家系圖)가 아니다. 이름, 자(字), 호(號), 관직, 봉호(封號), 묘소의 위치까지 체계적으로 기록된 방대한 인류 기록문화의 집적체다.    이처럼 혈통과 가계의 흐름을 체계적 문헌으로 축적해 온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대통령기록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주 김씨’라는 성씨와 본관을 화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며 회담장의 긴장을 완화시켰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 난항을 겪던 협상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끈질긴 설득에 “전라도 고집이 이렇게 센 줄 몰랐습니다”라는 농담 섞인 발언을 던지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성씨와 본관이라는 문화 코드가 정치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매개로 작용한 상징적 사례였다. 성씨는 혈통의 기억 장치다.    성(姓)은 혈족 집단을, 씨(氏)는 거주지·본관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의 뿌리를 기억하고 공동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류 보편의 문화 장치다.다양한 족보 문화의 세계한국족보박물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족보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손바닥만 한 휴대용 족보부터 키보다 큰 비석족보, 돌족보까지 형태 또한 다양하다.    왕실 친인척만 수록한 ‘왕실족보’, 동족 전체를 수록한 ‘대동보(大同譜)’, 분파 중심의 ‘파보(派譜)’, 직계 중심의 ‘가승(家乘)’, 여러 파를 통합한 ‘세보(世譜)’ 등 족보 유형 또한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현존 최고(最古)의 족보형 기록물로는 고구려 시조 추모왕(주몽)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계보와 업적을 기록한 ‘광개토대왕릉비’가 꼽힌다.    박물관 역사전시실에는 실제 광개토대왕비(높이 6m)와 동일 크기의 모형이 전시돼 있어 압도적인 역사적 상징성을 전달한다.효문화, 체험으로 배우다유등천 건너편에는 한국효문화진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5개 전시실로 구성된 효문화체험관은 체험형 전시를 통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링컨, 나폴레옹, 정조, 이순신 등 위인의 효 이야기, 이군익 선생의 금강산 효행담, 조선 철종 때 효자 도시복 이야기 등은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로 구성돼 있다.    ‘효나눔실’에서는 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자의 신체 변화를 직접 체험하며 공감교육이 이뤄진다.뿌리는 기억이고, 효는 문화다부모는 늙어도 가슴 속 부모는 늙지 않는다. 고향은 변해도 부모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움은 늘 시간 속에 남아 있다.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고향이 변했다면, 실은 내가 변한 것이다.”설 명절의 대이동 풍경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대, 귀성전쟁이라는 말조차 추억이 되어가는 오늘날, 뿌리공원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뿌리는 어디인가.’눈 덮인 묘역을 쓸며 조상과 대화를 나누던 시간, 그 마음의 풍경이 희미해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다시 뿌리를 찾게 된다.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 뿌리공원을 찾는 일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정렬하는 사유의 시간이다.설 명절, 조상과 부모, 그리고 나 자신의 뿌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 뿌리공원은 단순한 테마공원이 아니라,    ‘기억의 문화’, ‘정체성의 문화’, ‘효의 철학’을 품은 현대적 성지(聖地)다.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기억이 아니라, 계승과 성찰의 과정 속에서 오늘의 삶으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정신이자 문화적 자신이다. 그 재창조의 현장이 바로, 이곳 ‘효!월드’다.
최종편집: 2026-04-21 01: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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