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 번 죽어 마땅하리오.". 1815년 약관 청년 김병연(1807∼1863). 14년전인 순조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반란군 홍경래에게 항복한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詩題) 글로 강원도 영월 백일장에서 과거에 급제했다.    김익순은 홍경래軍 장수의 목을 사서 조정에 바쳤다가 들통이나 참형을 받고 그 후손은 폐족이 됐다. 안동 김씨 익순의 손자인 김병연이 이름없는 삿갓시인으로 세상을 주유하게 된 동인(動因)이다.어렵게 종의 도움으로 황해도로 도망가 그곳에서 숨어 자란 병연은 아무것도 모르고 과거에 응시해 할아버지를 ‘만 번 죽이라’는 글을 썼던 것이다.    눈물 한 줌, 바람 한 자락, 그렇게 그날로 "집안을 살리라"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친 채 "하늘 볼 낯 없다"며 삿갓을 쓰고 35년간 팔도를 떠돌다 죽었다.비운의 가족사와 개인적 불운이 스무 살 전도 유망한 초립동(草笠童) 생애를 이처럼 거친 황야로 내몰았던 것이다.    모친으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들은 김삿갓은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22세에 아들 학균을 낳고 삿갓을 쓰고 나선 길이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서러운 나그네로서 하늘을 삿갓으로 가린 채 다녔다고 해서 `김삿갓`, 아니 김병연의 삶은 바로 조선의 불효와 충효가 얽힌 복잡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가 불효의 죄목으로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된 이유, 그리고 충과 효의 경계에 대해 오늘날 뿌리를 잃고(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의제(議題)를 던진다. `가렴주구(苛斂誅求,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고 재물을 억지로 빼앗는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고 하지 않던가!    역성((易姓)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시기에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반란의 기운을 탓다‘홍경래의 난’은 홍경래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조선 후기를 뒤흔든 거대한 민란의 상징적 사건이다. 부패한 왕조, 불평등한 사회를 향한 민초의 불만이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평안도 정주에서 발발한 민란은 개경을 점령하고 한양 조정의 중심에까지 위협을 가할 만큼 백성의 지지를 받았다. 부패한 기득권들은 변하지 않았고 농민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홍경래가 꿈꿨던 변화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불충한 조부를 꾸짖었던 손자, 김삿갓은 결국 불효라는 자책에서 그릇된 세상을 풍자와 풍류로 달래며 평생 떠도는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질서에서 충과 효는 함께 가야 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김병연(김삿갓)은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 질서와 효도의 개념에 대해 크나 큰 갈등을 겪었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조부는 사상적, 정치적 입장에서 매우 보수적이고 성리학적 질서를 중시했던 인물로, 충과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를 철저히 따랐다.비단 정치로는 실패했지만 시로 부활한 인물이다. 한자어인 `김립(金笠)`으로 더 잘 알려진 삿갓시인은 풍자와 해학과 기지로 어우러진 파격적 시풍(詩風)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망쳐놓은 권력을 탓하고 민초에 애정을 듬뿍 담은 시로 세상을 한껏 조롱하며 살았다. 술안주가 없을 때에는 “사발에 뜬 청산 그림자가 좋다”며 군말없이 술을 든 주선(酒仙), 그리고 시 한 수로 여자를 유혹했던 천하 한량(閑良).    동시에 언제나 민초들과 동일한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말없는 혁명가였다.김삿갓은 전라도 동복 땅에서 객사해 묻혔다가 유언대로 젊은 시절 살던 영월 와석골에 둘째 아들 익균이 모셔 안장됐다. 평생 술 없는 동네는 안 들렀던 방랑도 그렇게 끝났다.
최종편집: 2026-04-20 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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