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의 이름난 영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한 명마(名馬)를 거느렸다는 점이다. 마케도니아의 정복 군주 알렉산더 대왕이나 중세 스페인 중부의 왕국 카스티야의 구국 영웅 엘 시드, 나폴레옹 황제에 이르기까지 명마는 항시 이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알렉산더는 어린 나이였지만 말을 타다 실패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말이 땅바닥에 길게 늘어진 제 그림자에 놀라 뒷발질을 하고 겅둥거리는 것을 곰곰이 살폈다.    이유를 알아차린 알렉산더는 태양을 향해 말 머리를 두게 한 후 안전하게 말을 탔고, 부케팔로스를 자신의 애마(愛馬)로 가질 수 있었다.    작은 일 같지만 어려서부터 지혜로웠던 알렉산더가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 원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동양의 전쟁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당대의 장수보다 더 이름을 날리는 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나라 왕 항우의 오추마와 삼국지의 적토마다.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의 무장 관우가 타던 명마 적토마는 하루에 천리를 내달린다. 온몸이 숯불처럼 붉고, 잡털이 하나도 없으며,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장(丈,약3m)에다 키가 8척(尺)에 이른다고 묘사하고 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을 만하나,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 또한 달리려 하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꼬 우여, 우여!”    항우가 유방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패색이 짙자 오추마를 곁에 두고 하늘을 향해 내뱉은 장탄식이다. 영웅의 쓸쓸한 최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추마에 얽힌 이야기도 항우의 영웅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어느 마을, 용 한 마리가 호수에 내려와 말로 변해서 사납게 날뛰는데 아무도 그 말을 타지 못했다.    그때 근처를 지나던 항우가 이 말을 발견하고 반나절 동안이나 말과 힘겨루기를 해서 말을 제압하고 길들여 탔는데 이 말이 오추마이다. 이 오추마는 충성심이 강하고 용맹해서 항우와 함께 8년여 전장을 누볐으나, ‘해하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에 이르러 죽음을 결심하고 오추마를 뗏목에 태워 보내려 했다.    이에 오추마는 주인의 죽음을 예감하고 구슬프게 울다가 스스로 물에 뛰어 들어 최후를 맞는다. 붉은 말띠의 해, 병오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말(馬)하면 박력과 생동감이 가장 먼저 떠 오른다. 탄력 있는 근육과 단단한 발굽에 거친 숨소리를 가진 말은 12간지 동물 중 가장 뛰어난 순발력과 강인한 인상을 자랑한다.    그래서 인지 “올 한해 말처럼 살라”고 권한다. 질주본능을 가진 말은 자유로운 영혼을 이른 말일까? 간결한 새해 덕담이 아리송하다.하지만, 말 특유의 속성 중 간과한 게 하나 있다. 무한질주와는 달리 귀소본능이 그것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길을 잃고 헤맬 때 말의 고삐를 풀어 길을 찾아낸 선인들의 지혜는 익히들어 왔다.    늙은 말이 뛰지는 못해도 가는 길을 안다는 말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노마식도(老馬識道)`라는 고사성어도 귀소본능의 한 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혹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김유신의 고사도 새겨 볼만 하다. 김춘추를 도와 통일신라 위업을 쌓아야 할 아들이 허구한 날 기방 출입으로 세월을 소일하자 어머니는 호되게 꾸짖었다.    김유신이 귀가 길 말 위에서 졸고 있는 사이에 자신을 술집 여자 천관녀에게 데리고 간 애마의 목을 베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귀소본능을 가진 말이 무슨 죄일까 마는... 말의 귀소본능으로 시작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의 지혜가 담겼다. 변방의 한 노인이 말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했지만 탄식은 커녕 자중자애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한참 뒤 집 나간 말이 다른 말까지 데려오자 이 또한 기쁜 내색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뿐인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다. 얼마 후 국경에 큰 전쟁이 터져 마을 장정 모두가 징집돼 갔다. 새옹의 아들은 면제되어 죽음을 면했다. 인생 사(事)는 정말 유전(流轉)인가 보다. 돌고 도는 세상일이 모두 덧없다.    우리는 길흉화복의 간극이 점점 짧아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갈수록 불가측성이 강한 현대사회, 그래서 일희일비(一喜一悲)에 흔들리지 않는 ‘새옹의 자세’는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최종편집: 2026-04-20 2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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