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강원도 영월 백일장. 약관의 청년 김병연(별호·이칭: 김삿갓, 김립(金笠) 1807~1863)은 한 편의 시로 과거에 급제한다.
시의 내용은 순조 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 당시 반란군에 항복한 장수를 통렬히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 장수의 이름은 김익순. 김병연(김삿갓, 김립(金笠))의 조부였다.조부 김익순은 홍경래 군의 장수로부터 목을 사서 조정에 바쳤으나, 그 사실이 드러나 참형을 당했고 가문은 폐족이 되었다. 이 비극적 가족사는 훗날 ‘삿갓시인’ 김삿갓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김삿갓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과거에 응시했고, 조부를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꾸짖는 시를 지었다. 급제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로부터 진실을 전해 들은 그는 하늘을 볼 낯이 없다며 삿갓을 쓰고 길을 나선다. “집안을 살리라”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쳤다. 그렇게 김병연은 이후 35년간 팔도를 떠도는 방랑의 길을 택한다.그의 방랑은 단순한 유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효에 대한 참회였고, 동시에 충과 효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한 지식인의 자기 유배였다.
조선 성리학 사회에서 충과 효는 분리될 수 없는 가치였다. 그러나 김삿갓의 삶은 이 두 가치가 때로는 서로를 배반하게 만드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하늘을 삿갓으로 가린 채 떠돌았다는 그의 삶은, 뿌리를 잃은 한 인간의 고독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 방랑의 길 위에서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로 세상을 풍자했고, 해학으로 권력을 조롱했다. 가혹한 세정을 두고 “가렴주구요, 가정맹어호”라 노래하며 민초의 편에 섰다.홍경래의 난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었다. 부패한 지배 질서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민중의 집단적 분노였다.
김삿갓은 조부의 ‘불충’을 개인의 죄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선택을 강요한 시대와 권력을 향해 시의 칼날을 세웠다.정치로는 실패했으나, 시로 다시 태어난 인물이다. ‘김립(金笠)’으로도 불린 김삿갓은 파격적인 시풍으로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술안주가 없으면 “사발에 뜬 청산의 그림자면 족하다”고 읊던 주선이었고, 시 한 수로 세상을 웃기고 울리던 천하의 한량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언제나 민초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전라도 동복에서 객사한 뒤, 유언에 따라 둘째 아들 익균에 의해 젊은 시절을 보낸 영월 와석골에 안장되었다. 평생 술 없는 동네는 들르지 않았던 방랑도, 그곳에서 비로소 끝을 맺었다.김삿갓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충과 효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는가. 가문의 명예와 개인의 양심은 과연 하나로 겹쳐질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뿌리를 온전히 알고 있는가.뿌리를 잃은 방랑시인이 남긴 이 물음은, 뿌리를 잊은 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삿갓 아래 감추었던 하늘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하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