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의 전통은 언제나 구분과 조화라는 두 축 위에서 작동해 왔다. 겉으로는 차별과 구분을 중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를 바탕으로 더 큰 목적, 곧 조화를 이루려는 데 있다.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 속에서 역할과 순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일이 원만히 성취되도록 하기 위한 예의 기능이며, 그 성취의 결과가 바로 ‘화(和)’다.이 원리를 소홀히 하면 시소가 균형을 잃듯 관계도 금세 흔들린다. 세상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어 단순히 모아놓는다고 하나가 되지 않는다.    조화란 다름을 인정한 채 일체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개성을 지키되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포용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에는 부모와 자식, 부부, 스승과 제자, 상급자와 하급자 등 자연적·사회적 구분이 무수히 존재하고, 그에 따른 역할과 질서가 뒤따른다. 예는 이러한 다양성이 혼란이 아니라 조화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지혜다.공자는 예를 실천하여 인화를 이루는 인간형으로 군자를 제시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여 조화를 이루되 무리하게 같아지려 하지 않는다.    반면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여 정체성을 버린 채 단순한 일치를 좇기 때문에 참된 화합에 이르지 못한다. 조화 없는 동일성은 결국 붕당을 만들고 분열을 낳는다는 점을 공자는 경계했다.맹자 역시 “천시보다 지리가, 지리보다 인화가 중요하다”고 하여 화합의 힘이야말로 공동체의 존립을 결정짓는 요소라 강조했다.    인화란 각자의 차이에 기반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분열을 만들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현상이다.    구성원의 유대와 화합의 가치가 약해지면, 아무리 완벽한 제도와 환경을 갖추고 있어도 공동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예의를 갖추는 일은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를 느끼게 하는 행위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양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본래의 도를 흐린다.    공자는 “교언, 영색, 과공은 모두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과장된 공손과 꾸며낸 태도를 도덕을 해치는 행위로 비판했다. 겉으로는 예절을 갖춘 듯하나 내면은 오만과 무시로 가득한 사람을 경계한 것이다.오늘날에도 이러한 문제는 반복된다. 특히 방송 등에서 ‘남성분, 여성분, 작가분’과 같은 과잉 존칭이 난무하고, 심지어 스스로에게 경어를 쓰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이는 정확한 예법이 아니라 예의 본질을 흐리는 언어적 무례이며, 과공비례를 넘어 하나의 왜곡이다. 예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예는 인간과 인간을 잇는 다리이며, 서로의 차이를 갈등이 아닌 조화로 전환시키는 기술이다.    그러나 비례와 무례를 넘어선 무도한 언행이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더욱 진지한 마음으로 예의 본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예의 핵심 가치는 화합이다.    구분을 통해 조화를 이루고, 조화를 통해 공동체의 힘을 키우는 일. 그 오래된 지혜가 다시 요구되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바른 예법을 실천할 때 사회는 유연해지고 공동체는 단단해지며,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최종편집: 2026-04-20 22: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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