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리학의 도와 충효의 길ㅡ상촌 김자수 선생이 남긴 유산   역사의 큰 물줄기는 언제나 시대를 밝히는 인물들에 의해 흐른다. 고려 말 조선 초, 왕조 교체의 격랑 속에서 성리학의 도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충과 효를 일관되게 실천한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선생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이셨다.성리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의 규범이자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 원리였다. 상촌 김자수 선생은 이를 공허한 말로 머물게 하지 않고 자신의 삶 전체로 증명하셨다. 나라를 섬김에 있어서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로 충을 세우고, 부모님을 모심에 있어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효를 다하였다.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닦아 세상을 바르게 한다는 성리학의 대의(大義)가 그의 생애 속에서 온전히 구현된 것이다.그의 효행은 사사로운 정성에 그치지 않았다. 모친의 병환 앞에서는 몸소 약을 구해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부모님을 여윈 뒤에는 삼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며 슬픔을 함께하였다.    이는 성리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 가운데 하나인 ‘경(敬)’의 정신, 곧 정성과 공경을 삶으로 드러낸 실천이었다.그의 충절은 더욱 빛난다. 나라가 바뀌는 운명적 전환의 순간에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기개를 굳게 지켰으며,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며 절의를 지켰다.    권력과 영달을 좇지 않고 양심과 도리를 기준 삼았던 그의 선택은 성리학적 ‘의(義)’를 행동으로 옮긴 위대한 실천이었다.오늘의 시대는 급격한 변화와 가치의 혼란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상촌공이 보여주신 성리학적 삶의 태도는 여전히 우리의 길잡이가 된다.    나라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부모를 공경하는 효는 개인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근본이다. 국가와 가정, 공적인 책임과 사사로운 도리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상촌공의 생애는 분명히 가르쳐 준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현의 뜻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오늘의 삶 속에서 되살려내는 실천이 필요하다. 충(忠)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효(孝)로 가정을 지키는 것, 바로 이것이 상촌 김자수 선생께서 후손들에게 남기신 참된 유산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 정신을 되새겨 행동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선현의 길은 시대를 넘어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최종편집: 2026-04-21 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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