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제 박사 칼럼】부끄러움의 미학(美學)“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이 시구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끄러움을 잘 알고, 예의와 체면, 도덕을 중히 여기는 문화를 지녀왔다.‘부끄러움’과 관련된 표현만 하더라도 수치(羞恥), 수괴(羞愧), 창피, 염치(廉恥), 체면(體面), 면목(面目), 면피(面皮) 등 다채롭다. 이들은 법적 강제력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절제하고 바르게 살도록 이끄는 도덕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공동체의 윤리를 지키는 내부적 기준이며,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방부제이기도 하다.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만이 지닌 고귀한 자질이다. 짐승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인간다움을 상실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孟子)가 인간 본성의 네 단서(四端) 가운데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 곧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인간이 본래 도덕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증좌이기도 하다.이러한 부끄러움의 내면에는 ‘의(義)’가 자리한다. ‘의’는 올바름이자,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며, 공동체의 정의와 질서를 관통하는 보편적 원리이다. 의는 때로는 의리로, 때로는 정의로 드러난다. 현실 속에서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가 곧 정의감이며, 이는 다시 용기의 원천이 된다.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 상촌 김자수 선생께서도 바로 이러한 의리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던지셨다.
그것은 단순한 충절이 아니라, 인간됨의 근본을 지키려는 도덕적 결단이었다.맹자는 부끄러움을 곧 양심으로 보았다. 그는 양심 없이 살아가는 삶을 인간다움의 포기로 간주하였다. 양심을 지키며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 떳떳한 인생임을 역설한 것이다.이 지점에서 필자는 ‘양반’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세습적 신분으로서의 양반이 아니라, 염치와 교양, 도덕성을 중시했던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양반 말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면으로는 늘 부끄러움을 자각하며, 겉으로는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이—그런 사람이야말로 오늘날의 진정한 ‘양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오늘날 우리 사회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을 잃는 순간, 인간다움도 함께 무너진다. ‘부끄러움의 미학’은 곧 인간성과 도덕성의 출발점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최후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