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역사 연재】제4회_ 고려 귀순 이후의 삶 왕위는 내려놓았으나, 고려 조정에서 누린 존귀한 예우 935년 11월, 경순왕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떠나 고려 송악(오늘날 개성)으로 향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향차와 보마의 행렬은 30리 넘게 이어졌고, 길가에는 이를 구경하려는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 담장을 두른 듯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왕철 등의 안내를 받아 송악에 도착한 경순왕을 고려 태조 왕건이 교외까지 나와 직접 맞이했다. 태조는 위로의 말을 전하며 궁궐 동쪽의 유화궁에 머물도록 배려했다.    이어 “왕께서 나라를 과인에게 주신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은혜이니, 종실과 혼인하여 장인과 사위의 관계로 영원히 인연을 이어가고자 한다.”며    정전에서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녀 안정숙의공주(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냈다. 훗날 아홉째 딸 공주 또한 경순왕과 혼인하였다.고려에서의 지위와 예우935년 12월, 경순왕은 관광순화위국공신 상주국 낙랑왕 정승공에 봉해졌다. 해마다 녹봉 1천 섬을 지급받았으며, 함께 귀순한 신라의 관원과 장수들 역시 모두 관직을 받아 등용되었다.왕건은 신라의 국호를 ‘경주’로 고치고 경순왕에게 식읍으로 하사했다. 또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고려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937년(태조 20) 5월, 경순왕은 신라 진평왕이 사용했다는 허리띠 ‘성제대’를 왕건에게 바쳤다.경순왕은 또한 자신의 백부인 잡간 김억렴의 딸을 왕건에게 권하여, 그녀가 제5왕후 신성왕후 김씨가 되었다. 신성왕후는 아들 왕욱을 두었는데, 그는 고려 안종에 추존되었으며 제8대 왕 현종의 아버지였다. 고려 왕실과의 혼맥975년 10월, 경순왕은 장녀를 고려 제5대 왕 경종에게 출가시켰다. 그녀는 현숙왕후 김씨가 되었으며, 이 인연으로 경종은 경순왕을 특별히 예우하여 위계를 태자의 지위인 상보령에 올리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부터 혜종·정종·광종·경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생존하였다. 태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왕 다음으로 존귀한 인물로 대우받으며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신라 왕실 혈통의 계승경순왕의 후손들은 고려 왕실에서 번성하였다. 특히 외손인 제8대 현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후 제7대 목종 이후 즉위한 고려의 모든 왕들은 신라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는 경순왕의 귀순이 단순한 왕조의 종결이 아니라, 신라 왕실의 피맥이 고려 왕실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경순왕은 비록 왕위를 내려놓았으나, 고려 조정에서 누린 예우와 그 후손들의 번영을 통해 또 다른 형태로 신라 왕실의 명맥을 이어간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최종편집: 2026-04-20 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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