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역사 연재】제2회_고립된 신라, 고려와의 연대 속에서 맞이한 마지막 결단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은 신라 제56대이자 마지막 군주로,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즉위하여 8년간 재위하였으나 마침내 935년 11월, 나라를 고려에 양국(讓國)하였다.부친은 신흥대왕에 추봉된 김효종(大阿飡), 모친은 헌강왕의 딸이자 계아태후에 추존된 김씨이다. 왕계는 문성대왕 김경응에서 상대등 김안,
각간 김민공, 의흥대왕 김인경(일명 김실홍)을 거쳐 김효종, 그리고 경순왕으로 이어진다.즉위 배경927년 11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급습하였다. 당시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경애왕은 포로가 되어 자결을 강요당했고,
왕비마저 능욕당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견훤은 경애왕의 외사촌 동생 김부(金傅)를 옹립하였으니, 이가 곧 경순왕이다.즉위 직후 경순왕은 부친 김효종을 신흥왕에, 조부 김인경을 의흥왕에 추봉하여 왕통의 권위를 높였다.
그러나 즉위 당시 국력은 이미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이 거듭되었다.고려와의 접근경순왕은 난폭한 견훤보다 안정된 기반을 갖춘 고려 태조 왕건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930년, 신라 장수 선필이 고려에 귀순하였고,
같은 해 고려군은 경북 고창(안동) 전투에서 후백제를 대파하였다. 이후 운주(충남 홍성) 경내의 30여 군현이 잇달아 고려에 항복하였다.931년 2월, 경순왕은 태수 겸용을 보내 왕건의 방문을 청하였고, 태조는 기병 50여 명을 이끌고 서라벌(경주)에 들어왔다.
경순왕은 백관과 함께 교외로 나가 극진히 맞이하였으며, 연회 자리에서 술기운에 왕건의 손을 잡고 “견훤 때문에 살 수 없다”고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왕건은 한 달여 머물며 군율을 엄격히 하여 민심을 얻었고, 돌아갈 때 왕실과 신하들에게 후한 물품을 하사하였다. 경순왕은 사촌 동생 김유렴을 인질로 보내 고려와의 유대를 공고히 했다.국운의 기울어짐934년, 후백제가 지배하던 웅진(공주) 이북 운주 지역의 30여 군현이 고려로 귀속되었다. 935년 여름에는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축출되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고려로 망명하였다.
왕건은 그를 상보(尙父)에 봉하고 식읍과 거처를 내주었다. 이 무렵 신라는 사방 영토를 상실하고 고립된 채 자력으로 국가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민심은 이미 고려로 기울었고, 경순왕은 더 이상 독립을 지킬 수 없음을 절감하였다.결단결국 935년 11월, 경순왕은 천년 신라 왕실의 역사를 마감하고 스스로 고려에 귀속함으로써 새로운 왕조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단순한 항복이 아니라, 피를 부르는 전쟁의 종식을 택한 역사적 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