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역사 연재】제1회_“경순왕 — 신라 천년을 마감한 마지막 군주”
경순왕(897~978)은 신라 제56대 왕이자, 천년 왕국 신라의 마지막 군주이다.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시호는 경순(敬順)이다. 일부 경주김씨 족보에 따르면 897년에 태어난 것으로 전하며,
문성왕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의흥대왕에 추존된 김인경(또는 김실홍·김관유), 아버지는 신흥대왕에 추존된 김효종, 어머니는 계아태후에 추존된 헌강왕의 딸 김씨이다.경순왕은 영특하고 준수한 외모에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고 전한다. 왕비 죽방부인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는 속칭 마의태자, 차자는 김덕지로, 두 왕자 모두 나라의 고려 귀속에 반대하여 개골산(금강산)으로 은거했다.왕위 즉위와 혼란의 정국신라는 경명왕 때부터 고려와 우호를 맺어 후백제를 견제하는 정책을 취해왔고, 경애왕 역시 이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927년 11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 수도 금성을 기습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경애왕을 사로잡아 자결케 했다. 이후 경애왕의 이종사촌 동생인 김부가 왕위에 올라 경순왕이 되었다.나라의 쇠망과 고려 귀속경순왕 재위 8년간 국력은 극도로 약화되고 영토는 날로 축소되었다. 935년 10월, 그는 군신 회의를 열어 고려에 나라를 양도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찬반이 엇갈렸다.
결국 같은 해 11월, 시랑 김봉휴를 보내 왕건에게 항복의 뜻을 전했고,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건국 이래 천년을 이어온 신라는 역사의 막을 내렸다.11월, 경순왕은 문무백관과 함께 금성을 떠나 송악(개성)으로 향했으며, 그 행렬이 30여 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송악에 도착한 경순왕은 태조 왕건의 환대를 받아 유화궁에 머물렀고, 왕건의 장녀 안정숙의공주(낙랑공주)와 혼인하였다. 또한 왕건의 아홉째 딸 왕씨와도 혼인하여 헌숙왕후 김씨를 두었다.고려에서의 예우와 최후경순왕은 고려에서 정승 상주국 낙랑왕에 봉해졌으며, 품계가 태자보다 높았다. 경주는 식읍으로 하사받고 사심관으로 임명되어 고려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978년(경종 3) 4월 4일, 세상을 떠나며 시호를 경순이라 받았다.능은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경기도 장단에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 18-2번지에 위치한다. 1975년 6월 25일, 사적 제24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