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학주 김홍욱, 언론으로 목숨을 건 선비.
“언론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
조선 효종 때, 누구도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한 사람의 억울함을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대의를 위해 침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친국(親鞠) 중에 장살(杖殺)되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뜻은 살아남아 시대를 일깨웠다.
그 이름은 김홍욱(金弘郁). 자 문숙(文叔), 호 학주(鶴洲). 본관은 경주. 그는 조선 후기의 청백리 문신이자, 절의와 언론의 상징으로 전해진다.억울한 빈(嬪)을 위해, 한 목숨을 던지다
1654년, 황해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김홍욱은 천재지변이 잦자 효종의 명에 따라 시무책을 올리라는 구언(求言)을 받는다.
그는 그 상소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담는다. 8년 전 사사된 소현세자의 빈,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밝히고, 그 원통함을 풀어주길 간언한 것이다.
이 상소는 즉시 파문을 일으켰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 귀국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그 아내인 민회빈 역시 처형되었는데,
이는 효종의 왕위 계승 정통성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대간(臺諫)은 침묵했고, 대신들은 눈을 감았다. 그런 와중에 김홍욱은 혼자 나섰고, 결국 하옥되었다.
“대의는 살해할 수 없다”
그는 친국을 받는 자리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신하의 도리를 다했을 뿐”이라며, 죽음을 각오한 진술을 이어갔다.
결국 그는 장살형에 처해졌고, 1654년(효종 5)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기 직전 남긴 말은 후세에 길이 회자된다. “언론을 가지고 살인해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
이 말은 그저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외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군주의 독단에 맞서고자 했던 신하의 마지막 의리였다. 진정으로 신민을 위한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시대의 울림이었다.유배와 복권, 그리고 서원의 추향
김홍욱은 조정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손들은 그의 생애를 정리해 『학주집(鶴洲集)』을 간행하였고,
1718년(숙종 44)에는 이조판서에 추증, 1721년(경종 1)에는 충남 서산의 성암서원(聖巖書院)에 배향되어 선현으로 제향되었다.
그의 시호는 문정(文貞). 문장은 곧고, 뜻은 정직하다는 뜻이다. 그의 생애는 그 시호처럼 단단하고 곧았다.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용기
김홍욱은 말이 많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단 한 번의 상소로 한 시대의 중심을 찔렀다. 그것이 그의 도리이자 신념이었고,
그는 그 신념에 목숨을 걸었다. 지금, 우리는 말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용기는 드물고, 대의를 지키는 정신은 희귀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학주 김홍욱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