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제1편】김세필, 맑음으로 세상을 이긴 선비조선의 격동기, 권세와 벼슬의 유혹을 뿌리치고 바른 뜻을 지킨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비옹(知非翁)’이라 불렀고, 거처를 ‘십청헌(十淸軒)’이라 이름 지었다.김세필(金世弼, 1473~1533). 맑고 곧게,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김세필은 연산군 초, 149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홍문관 정자와 박사를 거쳐 수찬으로 승진하고, 사헌부 지평에까지 올랐다. 젊은시절부터 문재와 인품을 인정받아 조정에서 촉망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504년, 갑자사화가 터졌다. 그는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된다. 중종반정으로 복직되었으나, 조정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1519년, 조광조가 주도하던 개혁이 무너지자, 김세필은 그의 죽음에 항의하였다. “군자의 도가 꺾였다”며 임금의 처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그는 결국 장형을 당하고 유배지 유춘역으로 끌려갔다. 1522년, 석방된 그는 더 이상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고향 충청도의 한적한 시골에 십청헌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조용한 말년을 보냈다. 십청헌(十淸軒), 곧 ‘열 가지 맑음을 지키는 집’.그가 제시한 삶의 원칙은 단순했다. 마음이 맑고(心淸), 말이 바르며(言淸), 행실이 곧고(行淸), 눈과 귀가 편견 없고(視淸·聽淸), 사귐과 거처, 재물과 일처리까지 모두 맑음으로 다스릴 것.십청헌은 그의 철학 그 자체였다. 스스로를 ‘지비옹(知非翁)’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쉰 살이 되어, 지난 아흔아홉 가지 잘못을 깨달았다”는 뜻에서 붙인 호였다. 그것은 한 인간의 고백이자, 세상을 향한 가장 정직한 성찰이었다.김세필은 유배와 퇴직 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본질을 향해 더 깊어졌고, 제자들에게는 “벼슬보다 인격이 먼저”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그가 떠난 뒤, 조정은 그의 공덕을 기려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시호를 ‘문간(文簡)’이라 내렸다.또한 충주에는 그의 유덕을 기리는 팔봉서원이 세워져, 지금까지 향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름을 크게 떨치진 않았지만, 그의 삶은 한결같이 맑았고, 뿌리 깊었다. 자기 수양과 청렴, 그리고 절의로 점철된 그 길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삶을 다스리고 있는가?”
최종편집: 2026-04-21 01: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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